항암제 박스는 언제나 깨끗하다. 매끈한 흰색 표면에 단정하게 인쇄된 약품명, 정확한 용법, 빈틈없는 주의 사항. 그 안에 든 약병들은 투명한 비닐에 싸여 반짝이고, 설명서는 한 글자의 오타도 없이 접혀 있다. 마치 이 약이 나를 구원할 '희망'을 포장하듯, 모든 것이 완벽하게 정돈되어 있다.
하지만 그 포장재는 절대 말하지 않는다.
주사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는 환자의 눈빛이 얼마나 공허한지, 링거줄에 연결된 순간 온몸이 얼마나 긴장하는지는. 구역질로 잠 못 이루는 밤, 머리카락이 베개에 흩어지는 아침, 거울 속 낯선 내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의 충격에 대해서는.
다발성골수종 진단을 받은 지 10년이 지났다. 초반 몇 년은 주사실 침대 위에서 보냈다. 간호사가 포장재를 뜯을 때마다, 저 투명한 액체가 내 혈관 속으로 들어오는 순간부터 내 몸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게 되었다.
이제는 알약이다. 주사에서 경구용 항암제로 바뀌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이제 집에서 편하게 먹으면 되니 다행이네." 하지만 포장재는 여전히 말하지 않는다.
이제 항암제가 내 집 안으로 들어왔다는 것을. 냉장고 옆 서랍에, 침대 옆 테이블에, 내 일상 공간 곳곳에 그 포장재들이 놓여 있다는 것을. 아침에 눈 뜨면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이 저 약통이라는 것을.
매일 같은 시간, 알람이 울리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손바닥 위에 놓인 작은 알약을 한참 바라보다가 삼킨다. 물과 함께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그 순간, '오늘도 또 시작이구나' 하는 무게감이 온몸을 짓누른다.
포장재에는 '부작용'이라는 단어가 있다. 오심, 구토, 탈모, 말초신경병증... 의학 용어들이 깔끔하게 나열되어 있다. 하지만 그 단어들은 너무 건조하다. '오심'이라는 두 글자로는 설명할 수 없다. 새벽 세 시, 화장실 바닥에 무릎 꿇고 앉아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데 계속 구역질하는 그 절망감을. '탈모'라는 단어로는 담을 수 없다. 배수구에 쌓인 머리카락을 치우며 울었던 날들을.
포장재는 말하지 않는다. 가족과 식사를 하다가도, 친구와 수다를 떨다가도, 알람 소리에 순간 현실로 돌아온다는 것을. '아, 나는 환자구나'라는 사실을 하루에도 몇 번씩 상기하게 된다는 것을.
포장재는 말하지 않는다. 약통을 여는 순간마다 '언제까지 이걸 먹어야 하나' 하는 질문이 떠오른다는 것을. 답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 질문을 멈출 수 없다는 것을.
여행을 갈 때도 이 약통을 챙겨야 한다. 약 먹는 시간에 맞춰 일정을 조정해야 한다. 누군가 집에 놀러 왔을 때, 눈에 띄는 곳에 있는 약통을 슬쩍 치워두게 된다는 것을. "요즘 괜찮아 보인다"는 말에 억지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지만, 속으로는 '괜찮은 척하느라 얼마나 힘든지 모를 거야'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주사실 침대에서도, 집 식탁에서도 항암제를 만났다. 수백 개의 깨끗한 포장재를 봤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그 포장재 위에서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라는 문구를 본 적이 없다.
의학은 발전했고, 항암제는 진화했다. 포장재는 더욱 안전하고 위생적이 되었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것은 여전히 약일 뿐, 환자인 나를 담지 않는다.
어쩌면 포장재는 애초에 환자를 위한 것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의료진을 위한, 약사를 위한, 제약회사를 위한 정보 전달 수단. 그 안에 환자의 삶이 들어설 자리는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알고 있다. 진짜 치료는 약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항암제를 먹는 것만큼이나, 두려움을 견디는 것도 치료의 일부라는 것을. 부작용을 참는 것만큼이나, 희망을 놓지 않는 것도 싸움의 과정이라는 것을.
10년 전 처음 진단을 받았을 때, 나는 포장재에 쓰인 글자들만 읽었다. 용법, 용량, 주의사항. 그게 전부인 줄 알았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나는 포장재가 말하지 않는 것들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 행간에 숨겨진, 환자들만이 아는 언어를.
이 칼럼을 쓰는 이유는 분노 때문이 아니다. 다만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다. 당신이 지금 손에 쥐고 있는 그 깨끗한 포장재 너머에, 당신만 느끼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그것은 이상한 것도, 나약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항암제 포장재는 끝내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말한다.
당신의 두려움은 정상입니다. 당신의 피로는 게으름이 아닙니다. 당신이 울고 싶은 건, 약한 게 아닙니다. 당신은 지금, 충분히 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포장재에는 쓰여 있지 않지만, 나는 10년의 시간으로 배웠습니다. 우리는 같은 언어로 고통을 읽고, 같은 마음으로 하루를 견딥니다.
오늘도 나는 약통을 엽니다. 깨끗한 포장재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압니다. 이 침묵 속에서도,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