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진정한 사랑의 묘약은 DEI였다” … 오페라가 바꾼 DEI 교육의 새 문법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교육 담당자라면 익숙한 장면이 있다. 무겁게 가라앉은 강의실 분위기, 팔짱 낀 수강생들, 스크린 위를 흐르는 딱딱한 법 조항, 그리고 끝나기 무섭게 비워지는 강의실. 정작 남는 것은 이수증 한 장뿐이다.
그런데 지난 7월 30일 서울 광진구 시립광진청소년센터 소극장의 풍경은 달랐다. 사회복지기관 종사자와 비영리단체 실무자들이 서로의 눈을 마주 보며 “살루떼(Salute)!”를 외치고, 이탈리아어로 노래하고, 바흐의 선율 위에 저마다의 몸짓을 실었다. 사단법인 미래복지경영(이사장 최성균)의 ‘ESG 시민리더 아카데미’ 4회차, “DEI와 융복합예술의 만남” 강의에서다. 이론에 머물던 DEI가 3시간짜리 ‘우리들의 축제’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무대를 연출하며 지휘한 이는 융복합예술가 윤송아 디렉터(아트컴퍼니엠오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그는 도니제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L'elisir d'amore)>을 모티브로 DEI를 인문학적·감성적으로 풀어낸 ‘오페라DEI’의 창시자다. 강연 직후, 그를 만났다.
Q. ‘오페라DEI’라는 이름부터 궁금합니다. 어떤 뜻인가요?
윤 디렉터의 설명은 언어유희처럼 시작해 철학으로 끝났다. “오페라(Opera)는 라틴어 오푸스(Opus·작품, 노고)의 복수형입니다. 여러 예술가의 노고가 어우러진 종합예술이라는 뜻이죠. 그런데 DEI를 이탈리아어로 읽으면 ‘데이’, 곧 ‘신들(Dèi)’이 됩니다.”
거창한 신을 말하는 게 아니라고 그는 못 박았다. “타인의 시선이나 환경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자기 삶의 가치를 온전히 빛내는 주체적 존재. 그게 인문학이 말하는 ‘신’입니다. ‘오페라DEI’는 각자가 ‘나다움’을 발현하고, 서로의 ‘너다움’을 맞추어, 마침내 아름다운 앙상블인 ‘우리다움’을 완성해 가는 예술적 여정입니다.”
나다움에서 너다움으로, 다시 우리다움으로. 다양성·형평성·포용성이라는 세 글자가, 누구나 기억할 수 있는 한 문장의 여정으로 번역되는 순간이었다.
Q. 하필 <사랑의 묘약>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배경이 ‘광장’이고, 주제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대답은 간결했지만 함의는 깊었다. “광장은 DEI가 살아 숨 쉬는 공간이고, 사랑은 DEI 없이는 결코 성공할 수 없는 미션이니까요.”
그래서 이 강의는 오페라를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여러 각도에서 뜯어보며 다양성과 형평성, 포용성을 토론하고, 마침내 이런 깨달음에 도달한다. 진정한 사랑의 묘약은 곧 DEI의 실천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 깨달음은 머리에 머물지 않는다. ‘예술로 DEI 경험’ 코너에서 참가자들은 자신의 소리와 몸짓으로 그것을 직접 몸에 새긴다.
Q.짧은 시간에 낯선 이들과 노래하고 춤추게 만드는 힘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의외의 출발점이 있었다. “시민중심ESG협회 김창준회장(숙명여자대학교대학원 전공교수)을 통해 DEI 교육을 기획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예술로 ESG를 풀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죠. 작품을 넘어 장르와 문화를 만들어 온 저에게는 무척 매력적인 주제였습니다.”
다만 쉬운 길은 아니었다고 그는 솔직히 털어놨다. “DEI_다양성·형평성·포용성을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몸으로 체험하게 하면서, 동시에 인문·철학적으로 정리해 마음에 남기는 일. 결코 만만치 않았습니다. 이번 시민중심ESG협회 김창준회장과의 만남이 그 소중한 작업을 비로소 세상에 꺼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Q. 강의를 마친 ESG체인지메이커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요?
그는 뜻밖에도 ‘나 자신’을 먼저 이야기했다. “다양한 영역에서 늘 타인을 위해 헌신하는 리더일수록, 먼저 챙겨야 할 것이 ‘나의 여유와 행복’입니다. 내 마음이 편안해야 타인의 다름을 받아들이고, 상대의 필요를 살피며 형평성을 고민할 수 있으니까요.”
그 여정은 한 방향으로 확장된다고 했다. “나를 사랑하는 자존감에서 출발해, 동료를 살피는 배려로, 나아가 사회의 구조적 차별과 장벽을 허무는 포용적 제도로. 그것이 진정한 ESG와 DEI의 결실입니다. 오늘 함께 부른 <오 솔레 미오(O Sole Mio)>처럼, 모두가 자기 안의 태양을 찾고 타인에게도 따뜻한 태양이 되어주길 바랍니다.”
■ 왜 지금, ‘오페라DEI’인가?
‘예술로 DEI를 배운다’는 발상은 낭만적으로 들리지만, 사실은 세계 유수 기업이 이미 걸어간 길이다. 스타벅스는 인종차별 논란 이후 미국 전역 매장의 문을 닫고 전 직원을 대상으로 ‘컬러 브레이브(Color Brave)’ 교육을 실시했는데, 일방적 강의 대신 영상 감상과 소그룹 토론, 그리고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를 적는 저널링을 택했다. 구글은 ‘아리스토텔레스 프로젝트’를 통해 최고의 팀을 만드는 비밀이 ‘심리적 안전감’, 곧 누구나 두려움 없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임을 밝혀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Allyship(동반자 의식)’, 로레알의 성과연계형 다양성 전략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주입식에서 자기성찰로, 이론에서 체험과 스토리텔링으로.
‘오페라DEI’는 바로 이 글로벌 흐름에 대한 한국적 응답이다. 정체성 콜라주, 멀티컬처럴 사운드, 스토리 서클 같은 해외의 감성형 DEI 워크숍이 지향하는 것을 — 언어와 직급을 넘어 ‘나다움’을 표현하고 감정의 수준에서 연결되는 경험을 — 윤 디렉터는 오페라라는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격조 있는 매개로 구현한다.
무엇보다 DEI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다. 한국은 ‘DEI’라는 표현을 쓰지 않을 뿐, 직장 내 성희롱 예방(남녀고용평등법), 장애인 인식 개선(장애인고용촉진법), 괴롭힘 방지(근로기준법) 교육을 이미 법정 의무로 강제하고 있다. 국제표준화기구(ISO)는 2021년 세계 최초의 다양성·포용성 표준 ‘ISO 30415’를 제정했다. 문제는 ‘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할 것인가’다. 해마다 반복되는 의무교육이 이수증 한 장으로 끝나느냐, 조직의 문화로 뿌리내리느냐 — 그 갈림길에서 ‘오페라DEI’는 후자를 택한 담당자들의 대안이 될 수 있다.
강의가 끝난 자리에는 3시간의 여운이 고스란히 담긴 후기가 쌓였다. 딱딱할 것이라 예상했던 ESG·DEI 교육을 ‘선물’이라 부른 이유가 그 안에 있다.
“예술과 ESG가 함께 갈 수 있구나 싶었습니다. 복지 현장에서 어르신들에게 맞는 예술·ESG 프로그램을 직접 해보고 싶다는 영감을 얻었습니다.” — 사회복지기관 종사자
“프로그램은 늘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오늘은 직접 몸을 움직이며 너무나 재미있게 배웠습니다. 저도 나중에 이렇게 예술과 ESG를 접목해 보고 싶습니다.” — 비영리단체 실무자
“처음엔 ESG와 오페라가 어떻게 연결될까 궁금했는데, 이렇게도 훌륭한 강의가 되는군요. 우리 모두 사랑의 묘약에 취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 복지 현장 리더
“오페라나 음악이 어렵게 느껴졌는데 장면 하나하나 친절하게 풀어주시니 이해가 쉬웠고, ESG를 일상에 어떻게 접목할지 고민하게 됐습니다.” — 아카데미 참가자
“그동안 ESG가 어렵게만 느껴졌는데,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일상 속에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저만의 실천 방법을 찾아야겠습니다.” — 시민 리더
“다양성·형평성·포용성을 내 삶 속에서 이렇게 쉽고 다채롭게 실천할 수 있겠구나 느꼈습니다. 즐거운 시간을 선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아카데미 참가자
“오페라를 접할 기회가 없어 어렵다고만 생각했는데, 오페라도 ESG도 너무나 쉽고 재미있게 배울 수 있었습니다.”
— 비영리단체 활동가
“오늘 강의를 듣고 마음이 아주 풍요로운 부자가 된 것 같습니다.” — 복지 현장 실무자
■ 이런 곳에 권합니다
‘오페라DEI’는 강의라기보다 한 편의 공연이자 워크숍이다. 딱딱한 법정 의무교육을 구성원이 스스로 참여하고 싶어 하는 시간으로 바꾸고 싶은 기업의 ESG·HR 담당자, 다양성과 포용을 조직 문화로 심고자 하는 NGO·비영리단체, 그리고 학생과 교직원이 차이를 존중하는 법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 익히길 바라는 학교에 특히 어울린다.
이론에 갇혀 있던 DEI가 예술이라는 유연한 그릇을 만나 참가자의 마음에 따뜻한 울림으로 뿌리내리는 순간을, 윤송아 디렉터는 오늘도 무대에서 증명하고 있다. 그의 다음 무대가 당신의 조직이 되지 말란 법은 없다.
■ 강사 소개
윤송아 디렉터는 융복합예술가이자 아트컴퍼니엠오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연출가·피아니스트·소프라노·음악코치·배우·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국립음악원 피아노·성악·극장음악코치 최고연주자과정을 졸업하고 베네토 주립연극원에서 배우 훈련을 받았다.
자각과 공감을 바탕으로 한 융복합예술창작시스템 'PROGRAMMA MOM’을 개발해 음악·움직임·연기·미술·영상을 아우르는 예술 창작과 교육을 이어가고 있다.